<여공의 밤>은 과거에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진 것들 혹은 이야기되지 않고 잊힌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된다. 조선의 첫 기록영화 <경성전시의 경> 이 유실되어서 하는 수 없이 시미즈 히로시의 <경성>으로 시작하는 영화. 김건희 감독은 “적절한 때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다른 시대가 오면 순전한 허구로 간주된다”고 믿는다. 일제 강점기 총동원령으로 영등포 방직공장으로 강제로 끌려온 농촌 소녀들이 그렇다. 이제껏 말해진 적이 없는 존재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영화는 어느덧 영등포 공간의 변천사로 확장된다. 풍부한 아카이브 자료들, 보이스오버를 대신한 아포리즘 같은 자막, 작가적 색채가 묻어나는 정제된 쇼트들에 힘입어 <여공의 밤>은 100년의 기억과 흔적을 견고하고 차분하게 그러담는다. (강소원)
Seoul,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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