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을 기억하는가? Do you remember Cheongpa?
2016 | 15min 39sec | Documentary | Korea
시놉시스
“서울역 고가 폐쇄, 우회 바랍니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파는 청파동 주변만 우회하듯 비껴나간다. 역사의 특성상 모여드는 사람들은 직장인, 외국인, 타지인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왔다 갈 뿐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 반면, 즐비한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단절된 청파동은 마치 혼자만 시간이 멈춘 듯하다. 고물상과 수공업 공방들, 낮은 주택 사이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있다, 청파동은 액자 틀 속에 박제된 기억의 공간이다.
기획의도
누구나 품고 있을 순간에 대한 영원한 기억
시간이 정지된 청파(靑坡)동에 관한 이야기
수많은 시인들이 청파동을 다녀갔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하고 묻는 최승자 시인부터 “청파동에서 그대는 햇빛만 못하다(...)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지나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이 나오고 선지를 잘하는 식당이 있고 어린 아가씨가 약을 지어준다는 약방도 하나 있다”는 박준 시인까지, 청파동은 더 이상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푸른 언덕’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 머물렀던 곳이다.
1970년 완공된 서울역 고가도로는 노후화로 인해 2006년 철거 계획이 발표되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연기되었다. 이어 2013년 계획된 고가도로 신설 역시 무산되었으며 2015년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을 모티프로 <서울역 7017>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2017년 4월 개방을 목표로 올해 3월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서울시청의 해당 프로젝트는 “공간적 단절 회복과 서울역 일대 통합적 도시재생을 통한 도심 활력의 전파”를 목적으로 진행되는 단기 사업이기 때문에 시민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10년 동안의 기간을 두고 만들어진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을 표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울시의 본 사업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울역 서측지역의 재생”명목 하에 서울역 일대(△서계․청파동 △중림동 △회현동 △공덕동 △남대문시장)의 개발로 이어졌다. 그러나 어쩐지 “재생”보다는 “삭제”에 가까워 보인다. 청파동에는 박제된 기억과 시간이 머문다. 훗날 “청파동을 기억하느냐”고 묻게 될, 곧 허물어질 ‘청파동’이라는 공간을 기록으로 박제하고자 한다.
Synopsis
"Seoul Station Overpass Closed, please detour"
The crowds at the center of Seoul Station are turning away only from the area around Cheongpa-dong Because of history, most of the people are office workers, foreigners, and from another province. They come and go, not stay. On the other hand, Cheongpa-dong, which are disparate and disconnected by the surrounding skyscrapers, seems to be stood still. There are children and old people between the junkyard and the handicrafts and the low housing. Cheongpa-dong is a stuffed space that exists only in memory.
Director’s Statement
The eternal memory of the moment that everyone have.
The Story of the Cheongpa which was frozen in time.
A number of poets visited Cheongpa-dong. From "Do you remember Cheongpa-dong?" asked poet Choi Seung-ja, to "In Cheongpa-dong, you are not as bright as the sun. There is a room in Cheongpa-dong where a friend was burned and died, a good ox blood soup restaurant, and a pharmacy where a young girl makes medicine," said poet Park Joon, Cheongpa-dong is no longer just a geographical name, but a "blue hill" as its name is. It's where we all stayed one day.
The Seoul Station Overpass, completed in 1970, was announced demolition plan in 2006 because of deterioration but it was delayed due to cost problems. And then the planned overpass construction in 2013 was also canceled, and the <Seoul Station 7017 Project> was launched in 2015 with a motif of High Line Park in New York. <The Seoul Station 7017 Project> began construction in March 2016 with the aim of opening it in April 2017. Because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s project is a short-term project aimed at "recovering spatial disconnection and spreading urban vitality through integrated urban regeneration" in Seoul Station, it’s hard to claim to represent New York High Line Park, which was created with a period of 10 years from the citizen’s voluntary movement.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s main project led to the development of the Seoul Station district (Seogye-Cheongpa-dong, Jungnim-dong, Hoehyeon-dong, Gongdeok-dong, and Namdaemun Market) under the name of "rehabilitation of the relatively underdeveloped west area of Seoul Station." Somehow, however, it seems more like a "delete" than a "regeneration." The stuffed memory and time stay in Cheongpa-dong. I want to record this area called "Cheongpa-dong," which will soon be torn down and will be asked later to "Do you remember Cheongpa?"
청파에 관한 시 POEMS OF CHEONGPA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 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 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 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 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 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 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2:8 /
박
준
― 청파동 1
밤이 오래된 마을의 가르마를 타 보이고 있다 청파동의 밤, 열에 둘은 가로등, 열에 여덟은 창문이다 그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다치고 팔일은 앓았다 두 번쯤 울고 여덟 번쯤 누울 자리를 봐두었다 그건 열에 둘은 잔정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또 내가 청파동에서 손목이니 근황이니 오방색이니 했던 말들은 열에 여덟이 거짓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이 보는 내 모습이 보인다 새실새실 웃다가도 괜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둘, 다시 당신을 생각해 웃다가 여전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여덟이었다 남은 청파동 사람들이 막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열에 둘은 폐가고 열에 여덟은 폐허였다
― 청파동 1
밤이 오래된 마을의 가르마를 타 보이고 있다 청파동의 밤, 열에 둘은 가로등, 열에 여덟은 창문이다 그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다치고 팔일은 앓았다 두 번쯤 울고 여덟 번쯤 누울 자리를 봐두었다 그건 열에 둘은 잔정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또 내가 청파동에서 손목이니 근황이니 오방색이니 했던 말들은 열에 여덟이 거짓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이 보는 내 모습이 보인다 새실새실 웃다가도 괜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둘, 다시 당신을 생각해 웃다가 여전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여덟이었다 남은 청파동 사람들이 막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열에 둘은 폐가고 열에 여덟은 폐허였다
용산 가는 길 / 박 준
―청파동 2
청파동에서 그대는 햇빛만 못하다 나는 매일 병(病)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빛은 적막으로 드나들고 바람도 먼지도 나도 그 길을 따라 걸어나왔다 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이 나오고 선지를 잘하는 식당이 있고 어린 아가씨가 약을 지어준다는 약방도 하나 있다 그러면 나는 친구를 죽인 사람을 찾아가 패(悖)를 좀 부리다 오고 싶기도 하고 잔술을 마실까 하는 마음도 들고 어린 아가씨의 흰 손에 맥이나 한번 잡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
관음(觀音) / 박 준
―청파동 3
나는 걸어가기엔 멀고
무얼 타기엔 애매한 길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
청파동의 밤길은 혼자 밝았다가
혼자 어두워지는 너의 얼굴이다
일제 코끼리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먹는 반지하 집, 블라우스를 털어 널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키고 TV의 음량 버튼을 나무젓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무를 집어먹고 엄마 체르니 삼십 번부터는 회비가 오른대 고장 난 흰 건반 대신 반음 올려 검은 건반을 치며 목이 하얀 네가 말했습니다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接)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스탭 STAFF
연출, 촬영, 편집
김건희 | 백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