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되는 기억          

처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의 무드에 맞추어 건조하고 답답한 시선으로 감상하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당산>의 서사와 상(橡)들은 의인화되어있다기보다 액화되어 있었다. 즉 울타리의 빈 틈 의식 너머 비집고 스밀 수밖에 없는 형질인 셈이다. 때때로 고향의 기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매개를 타고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당산>에서, 감독은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미지의 불안들이 ‘장롱’을 타고 불안한 꿈들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당산>의 많은 부분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 데에 할애된다. 영화는 화자/감독의 유년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거나 버려진 장소들을 조망한다. 그것들의 쓸모는 다른 유사한 것들로 대체되며 도시를 더욱 중첩된 복합체로 만든다.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나 그들이 일으키는 놀이터의 모래먼지 같은 것들 역시 같은 궤이다. 아이들은 사라지고, 공간은 새로운 아이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 깊은 곳의 눈-이전에 마주쳤던-들’이 바라보고 있다. 이 영화가 시선의 측면에서 갖는 큰 구도는 공장의 인부인 성인 남성들과 그들에게 응시되는 어린아이들의 집합으로 대두된다. 화자가 지니는 위치는 불분명하다. 그는 어린아이 덩어리의 일면인 동시에 불안에 되돌아와 어린 시절의 레이어 위에 개체로서 선 채 이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는 어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눈들’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눈들’에 의해 바라보아지고 있고, 위축된 모습으로 ‘눈들’을 바라본다.    화자는 장롱을 타고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는 데에 성공했을까? <당산>이 화자의 기억에서 시작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화자는 신변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지우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자와 영화 속 어린 아이들이 이 거리 두기는 번번이 실패된다. 이것은 실책이 아니다. 화자는 자기 자신에게 깊숙이 얽혀있는 끈적한 기억들에 과감히 재접속하고 자신의 깊고 개인적인 기억, 그리고 나아가 이미 자신의 거주 이전에 공간이 가졌던 길고 긴 기억을 함께 되살린다. 이것은 공간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뒤섞고 다시 기술하는 작업이다. <당산>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은행나무로 다시 돌아와 막을 내린다. 이전과 달리 은행나무는 생생한 컬러 화면으로 보여진다. 장롱을 타고 온 것은 화자만이 아닌 것이다. 모든 당산이 화자와 함께 현재로 돌아왔다.    

고담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제14회 졸업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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