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생 김건희 감독은 당신에서 태어나 20여년을 살았다. 그곳을 떠난 뒤 다시 당산을 찾았을 때 감독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 자신의 기억 속에서만 어렴풋하게만 남아 있는 잔상을 좇아 보기로 한다. 희미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낼 때 감독에게 실마리가 돼준 게 있다. 바로 누군가의 ‘눈’(目)이었다. ‘누구의 눈이었을까.’ 감독은 그 눈들이 자신을 지난 20여 년간 불안하게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당산 하면 떠오르는 기억 속 알 수 없는 눈들.  《당산》은 사적인 불안의 기원과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의 역사를 여러 방위에서 이어가보는 작업이다. 공간과 사적 기억을 연결하는 다큐멘터리의 작업 방식과 주제는 너무도 익숙하다.  <당산> 역시 그 주제의 범주 안에 충실히 위치해 있다. <당산>이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려 한 지점은 감독이 당산에 살 며 느껴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의 정서, 그 실체를 궁금해 하며 당산이라는 공간의 역사와 연결 지어보려 한 점일 것이다. 감독에게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잔상, 이미지가 ‘눈’이라 했다. 화면에는 누군가의 눈들이 클로즈업돼 제시된다. 그 눈은 시선, 눈초리, 바라보는 행위였을 수 있겠다. 그 눈의 실체를 추적하던 영화는 당산의 구체적인 공간으로 불쑥 들어간다. 이를테면 아파트들에 둘러싸인 당산 에서 좀처럼 이질적인 곳이 있다. 도통 뭐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던 기계 설비 공장이다. 감독을 불안 하게 만들었던 눈은 어쩌면 그곳을 지나며 마주쳤던 정체도 이름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낯선 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던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11년 일본인이 세웠다는 조선피혁주식회사에 관한 자료를 보여준다. 앞선 노동자들과는 달리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 속 인물이다. 기록해둘 수 있고,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때 그곳에서 기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이들이야 말로 역사에 남아 있다는 증거다. 기록할 수 없고, 기록이 없는 이들은 역사에 이름이 없다. 그러니까 (이름 없는 이들이 일했던) 공장들이 사라졌을 때 자신의 기억 속 불안까지 흘러간 것 같아 다행스러 웠다는 감독의 고백은 감각적으로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개인의 불안과 공간의 역사를 연결하는 이러한 <당산>의 시도가 매번 수긍이 가는 건 아니다. 영화는 불안의 기억이란 감각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또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때론 설명적으로 비춰지는 부분도 있다. 영화 속 ‘눈’이라는 상당히 무섭고 두려운 이미지가 보는 이의 감각 을 좀 더 세게 두들겨주길 바라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당산>은 설명되지 않는 감각으로서의 불안, 시대와 공간이 개인의 감각과 불협하며 연결되는 과정이야말로 기억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또한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 것들은 기억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이 군인들의 눈만큼은 기억의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고백이 그러하다. 정체 모를 자신의 불안의 궤적을 좇던 감독은 마침내 도착 한 집을 비추며 이렇게 말한다. ‘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집이 어디에도 없음을 확인 하기 위해 찾아다닌 것 같다.’ 잊히고 사라진 것을 복원하려는 게 아니다. 잊힌, 사라진 것들이 잊혔다고 사라졌다고 확인할 뿐이다. 있어야할 것이 없다고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당산>의 기억에는 공백이 있고 불안이 그 자리를 메울 뿐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8프로그래머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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